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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칭찬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왕국 주젯다(Jeddah) 총영사관의 강규철 영사님, 우성호 실장님과 외국인 직원 말릭님을 칭찬하며 감사드립니다.

작성일
2025-11-29 20:37:49
조회수
134
작성자
권**
주젯다 총영사관에서는 통상적인 영사조력의 범위를 한참 넘어서는 적극적이고 끈질긴 도움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육체적 정신적 위험에 처하였던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특별히 세분께 감사드리며, 감사의 요지들을 9가지 항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내용이 많지만 모든 항목들이 다 중요하니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종교 관련 문제와 사건들에 극히 민감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하필 종교 관련 혐의를 받아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었었으며, 영사관의 인맥으로 포섭한 군사령관조차도 자신이 어찌할 수가 없다고 난색을 표한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종교 혐의자를 10일만에 구금 해제를 하여준 것은 정말 큰 공로입니다.

국력이 약한 방글라데시의 수감자, 예멘의 수감자는 아직 혐의가 입증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유치장에서 10개월, 6개월씩을 갇혀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갇혀 있던 동료 수감자들의 얘기입니다. 그들 외에도 몇달씩 갇혀 있는 분들이 있었는데, 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영사관이 수십가지의 노력들을 밀어붙인 끝에 만 9일, 총 10일간의 구금 끝에 햇빛을 보고 그토록 보고 싶던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 덥고 모래폭풍이 날리는 사우디에서 바깥 길거리에서 노숙을 해도 유치장에 비하면 천국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심하게 힘든 곳이었습니다)

개요: 9월 28일에 공항에서 체포되었고, 유치장에 구금되었으며, 10월 8일에 임시석방(가석방)되었습니다. 영사관의 보호와 보증 아래 게스트하우스에서 안전히 머무르며 모든 행정절차 및 대비들을 진행하여 나가다가 11월 4일에 사건이 최종 종결처리 되었으며, 종결 이후에도 영사관에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주심에 따라 최대 2주 또는 그 이상으로 경과될 수 있었던 경찰의 행정 처리를 불과 3일만에 완료하여 11월 7일에 출국허가를 받고 당일에 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였습니다. 저의 오른쪽 얼굴, 즉 우측안면 상악동에 자리한 점액낭종의 심각한 비대화와 염증으로 인해 급발성 고강도 통증과 수면중 호흡곤란 등의 건강상 문제가 심각했는데 영사관에서 경찰의 느린 행정을 앞당겨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예정되어 있던 수술 날짜를 놓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놓치면 정말 오래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제 개인적으로 천행이었고 그 천행을 영사관에서 만들어주셨습니다. 이분들이 해주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일일히 다 열거하자면 최소 수십가지를 써야 하고 자세히 쓰려면 족히 백가지 항목을 넘어가는 분량입니다.

[강규철 영사님, 우성호 실장님, 외국인 직원 말릭님 각각이 해주신 일을 따로 적으려다가 그렇게 정확히 나누는 것이 제게 조금 어렵고 부정확할 수 있는 데다 세분께서 한 팀으로 움직이시며 역할을 나누어 저를 도와주셨기에 나눠서 쓰지 않고 한번에 쓰는 것을 양해하여 주시고 저의 생명과 건강을 구해주신 이 세분 저의 은인들에게 큰 포상을 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 일처럼 걱정하며 고민하고 마치 자기 아들을 걱정하듯이 놀라서 뛰어오고, 완전히 놀라서 자기들도 패닉이 된 것 같은 표정으로 저의 안부를 물으며 창살 너머 작은 틈으로 손을 잡아주시고, 제가 임시석방 되었을 때, 또 최종 사건종결이 되었을 때 자기 일처럼 흥분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제가 이것을 평생에 어떻게 잊겠습니까?]

1. 9박 10일간의 구금 끝에 임시석방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영사관에서 교민사회 등을 총동원하여 방법을 강구하신 끝에 사우디아라비아 군대의 한 군사령관이 연결되었고, 이미 검찰에 송치된 사안이라면 자신이 개입해도 나아지는 것이 없을 것이라며 거절한 사령관에게 영사관에서 그래도 한번만이라도 말해달라 하여 임시 석방 조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검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는 사우디 특유의 보증인 제도를 통해서만이 가석방 (또는 그 나라 용어로 '임시 석방')이 될 수 있는데 보증인을 세우고 보증하는 절차가 매우 오래 걸리는데 군사령관을 통해 일단 임시 석방 결정이 내려지고 주젯다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자체로서 보증인이 되는 형태로 해달라고 해주신 것이 어떻게 성사가 됨에 따라 석방의 요건이 충족되었고 풀려 나왔습니다. 사건이 종결되기까지 걸렸던 시간을 고려하면, 영사관의 인맥의 힘으로 저를 그때 임시석방을 해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그곳에 5주가 넘도록 갇혀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9박 10일의 구금으로 제 인생에 가장 가혹했던 창살과 철문 안에서의 고난은 끝이 났습니다.

2. 원래 허용되지 않는 형태의 면회를 경찰서장을 접촉하는 등 특수한 방법으로 수차례 성공시켜주셔서 통신이 차단된 채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있던 제게 유일한 희망과 생명의 줄이 되어주셨고, 아버지와 통화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또래 남자들 중에서도 눈물이 잘 없는 편이지만 예상치 못한 극심한 고난에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습니다.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고 통신이 완전히 차단된 그곳에서 영사관 분들이 오시지 않았더라면 제가 어디까지 더 정신적 붕괴를 겪었을지 아찔합니다.

3. 검찰의 조사 기간이 사전 공지 없이 계속 연장되어 저와 저희 가족들, 지인들에게 큰 절망과 공포를 안겨주었고, 언제 풀려날지 알 수 없는 유치장 구금 중에 저는 정신력으로 버텨보겠다고 이를 악물었으나 하필이면 구금된 첫날 그 안에서 비위생적인 식사를 먹고 심각한 질병에 걸려 심한 복통과 탈수 증세로 고통이 따르자 정신적 대비가 인내력이 빠르게 붕괴되었습니다. 병원에 가던 그날에는 심지어 시력과 청력이 흐려져가며 똑바로 걷기도 어려운 극심한 탈수 및 의식혼미 증세까지 나타나 상당히 위험했었는데 (한국에 오고 나서 검색해보니 중증 탈수 증세였어서 응급조치를 받지 않았으면 2일 내로 사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경찰에 강하게 요청하여 주셔서 저를 경찰들이 병원에 데리고 가서 응급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현지 경찰이 관례상 환자가 있어도 병원에 잘 보내주지 않습니다. 제 동료 수감자들의 팔꿈치에서 고름이 줄줄 나오고 잘린 양쪽 엄지손가락들이 아직 다 아물지 않아서 곪는데도 그것을 치료해주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이송될 수 있었던 것은 제게는 천행이었고, 영사관의 적극적인 요청 덕분이었습니다. 병원에 입원까지는 못하였지만 응급조치를 받으니 탈수 증세가 완화되었고 병원에서 준 약을 유치장에 돌아온 후 먹으니 3일 정도 지나서는 복통이 잦아들고 거의 다 나았습니다. 그래서 구금된 후 7일간 물 외에는 아무것도 입에 못 대다가, 가석방되기 전 이틀동안은 조금이라도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4. 임시 석방된 후, 교민 게스트하우스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직접 소개해주셨는데, (총영사관이 보증을 서기로 한 것이 사우디 검찰에 accept이 되었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에 숙박하고 Jeddah 市 경내를 벗어나지 않는 조건 하에 검찰 및 경찰 조사를 기다리며 머무르는 조건으로, 지옥같은 쇠창살 안에서 나와 문자 그대로의 천국과도 같은 교민 게스트하우스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교민들의 위로를 받으며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5. 가석방 상태에서 검찰 조사가 아직 진행 중이었으며 기소될 가능성이 있었기에 현지에서 변호사를 선임하여 대비를 해야만 했는데, 영사관에서 로펌을 소개해주셨고, 소개받은 변호사와의 만남에 수차례나 동행하여 주시며 언어가 잘 안 통하는 저를 위해 변호사와 소통하여 주셨습니다. 변호사 선임 및 수임 등을 위한 절차가 상당히 복잡하였는데 영사관 차량으로 저를 이곳저곳에 데리고 다니시며 그 모든 행정 절차들을 다 처리해주셨습니다.

6. 매우 열악한 유치장에 10일간 구금되어 있을 때, 위생적인 음식들과 위생욤품들, 좋은 옷들을 넣어주셔서 그것들을 입고 사용하며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갇혀 있고 비누나 기본적인 위생용품도 지급되지 않았으며 상상 이상으로 열악하며 저뿐만 아니라 다른 수감자들의 각종 질병들의 원인이 되는 매우 비위생적인 환경이었습니다. 임시석방이 되지 않았다면 유치장에서 5주가 넘는 시간동안 있어야 했는데 그것은 제가 절대로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미쳐서 혀를 깨물고 자살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10월 8일 오전에 임시석방이 되었는데, 그 직전까지 정말 마인드컨트롤이 안 되어서 경찰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동료 수감자들과 주먹질하며 싸우게 될까봐, 내 자신이 미쳐서 폭주할까봐 정말 두려웠습니다. 제정신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을 무렵에 가석방이 되었습니다.

7. 사우디아라비아 유치장은 수감자들의 상호 폭력이 빈발하고 밤에도 매우 밝게 빛을 켜고 40명에 달하는 수감자들의 소음으로 제대로 자기도 어렵고, 식사는 극히 비위생적이며, 침구류에는 음식 찌꺼기들이 달라붙어 있는 등 열악하였으나 영사관에서 경찰서장에게 직접 부탁하는 통로를 마련하여 경찰서장이 저를 '내 아들같이 대하겠다'라는 구두 약속을 받아 내시고 실제로 제가 갇혀 있던 동안은 수감자들이 이전에 본 적 없는 친절과 위생 조치들을 경찰들이 종종 취하여 주었습니다. 경찰서장이 저를 '아들같이 대하겠다'고 약속한 이후로 위협적이던 경찰들의 태도가 많이 누그러지고 저를 인간적으로 대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정신적으로 완전히 붕괴 상태에 있던 제게 정말 중요했습니다.

8. 영사관에서는 외교부를 통하여 공문을 작성하여 보내셨는데, 여기에 적힌 내용들이 나중에 최종 사건종결에 결정적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영사관에서는 저를 면회하러 오셨을 때 건강 문제와 더불어 정신적 붕괴 상태에 제가 놓여있음을 아시고 그것을 공문으로 작성하여 보냈습니다. 이에 따라 저는 검찰 및 경찰의 결정으로 정신병원에 인도되었고, 정신과 의사들의 진료 (또는 조사)를 거쳐 '정신병자'로 인정되어, 정신병원에 다녀온 바로 다음날 마침내 사건이 최종 종결되었습니다.

9. 앞서 언급드린 것처럼 사건 종결 후 출국 허가가 날때까지 빠르면 1주, 길면 2주동안 경찰의 closing 과정이 행정절차로서 또 남아 있었습니다. 사우디에서 행정 지연이 잦아서 2주가 넘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미 한번 연기된 서울대학교병원 수술 일정이 담당 집도의 교수님의 은퇴로 인하여 연기될 수는 없었고 몇달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영사관에서 힘써 주셔서 3일만에 행정이 완료되어, 출국허가 통보가 난 당일 저녁 즉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여, 한국에서 2일을 쉰 후 수술을 잘 받을 수 있었습니다.

위의 사항들을 다 읽어주시고 포상하여 주시기를 청원드립니다.
제가 빠뜨린 것들도 알아 주시고 상 주실 수 있다면 더더욱 감사드리겠습니다.
억울하게 일이 꼬였을 경우 2-3년 정도 징역을 살게 될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신병자'로 취급되어 '기독교 선교사'라는 혐의를 벗고 체포 5주만에 기소 없이 사건이 종결되었으며,
5주간 그 극도로 열악한 구금시설에서 도저히 제정신으로 버틸 수 없었던 저를 10일, 만 9일만에 풀려나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쉴 수 있도록 해주신 분들입니다. 경찰을 들들 볶아 한국에서 잡혀있던 수술날짜에 맞추어 도착하여 수술을 받게 된 것도 전혀 기대하지 못한 기적이었습니다. 저는 수술을 잘 받고 현재 2주가 지나 어제 실밟을 풀고 오늘 직장에 복귀하였습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하여 사건의 배경과 유치장에 구금되기까지의 과정, 제가 혐의를 받은 이유를 첨부 드립니다.

저는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 Jeddah 市의 한 해변 공원에서 무슬림 근로자들과 대화 중에 종교 이야기가 나와 대화를 하던 중 사우디아라비아의 종교경찰인 '무타와'들에게 신고되어 경찰서로 이송되었다가 간단한 조사 후 12시간 정도 후 풀려난 일을 겪었습니다. 당시에는 영사관이나 대사관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일이 금방 해결된 줄 알았습니다. 따라서 경찰서에서 나온 후에는 정상적으로 남아 있던 업무들을 본 후 한국으로 귀국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의 지침은 조사를 다 받을 때까지 Jeddah 市 경내에 머무르라는 것이었고 저도 제 지인도 아랍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이것을 모르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현지 경찰의 지침을 무시하고 출국을 하게 된 것과 같은 꼴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제가 조사를 받지 않고 도망갔다고 간주한, 저를 18년도에 경찰에 신고하여 인계한 그 종교경찰 무타와들은 2019년에 저에 대한 형사고발장을 작성하여 제출하였습니다. 혐의는 제가 '기독교 선교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공과대학 3학년 학부생에 불과했던 저를 선교사로 오해하여 고발장을 접수하였습니다.

저는 올해 9월말, 사우디 사막 지역을 여행하기 위해 인도 뉴델리 여행을 마친 후 개인여행으로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Jeddah의 국제공항에 착륙하였습니다. 18년도에 작지 않은 일이 있었기에 여행을 계획하던 때에 조금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아무리 나빠도 입국 거부 정도로 끝나서 비행기값 날리고 여행 못하고 다시 한국에 와야 하는 정도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성 이슬람 종교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종교적 엄격성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혹여나 입국 거부를 당하고 비행기값을 날리게 될까봐 불안해하며 e-Visa를 신청하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e-Visa를 정상적으로 발급해주기에, 아무 문제가 없고 괜찮은 것으로 너무도 순진하게 믿고 뉴델리 공항에서 사우디아라비아行 비행기에 편안하게 몸을 실었었습니다.

미래에 가혹한 역경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그때는 전혀 꿈에도 몰랐습니다. 결과는 현지시각으로 9월 28일 오후 10시쯤 Jeddah 국제 공항의 입국 심사대에서 여권을 검사할 때 전산 정보가 뜨고, 직원들이 저를 경찰들에게 인계하였습니다. 공항에서 2시간 정도, 이곳저곳을 경찰들에게 끌려다니며 기초조사를 받다가 쇠창살이 있는 경찰차 뒷칸에 실린 채로, 화장실에 가는 것도 거부되고 경찰들에게 여러 모욕들과 위협들을 받으면서 (신체 폭력은 없었으나 귀에 대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때리는 시늉을 하거나, 화장실이 급해서 가고 싶다는데도 보내주지 않는 등 상당히 비상식적으로 행동하였습니다) 공항 근처의 한 경찰서로 이송되었습니다. 거기서 창살 안의 좁은 방에 갇혀서 8시간 정도 머물렀는데 그 8시간도 제게는 참 길게 느껴졌습니다. 아침에 주젯다 총영사관의 우성호 실장님이 경찰서에 영사관 직원 말릭 (호칭을 모르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과 함께 오셔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시고 저를 경찰들에게 변호해주셨습니다. 그 후 유치장에 이송되어 구금되었다가 10월 8일에 가석방되었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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